처음 독서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3P 본깨적 (본 것, 깨달은 점, 적용할 점) 강의를 들으러 갔을 때였다. 사실 책을 읽는 방법이랄 게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기대하지 않고 갔던 강의에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 강의를 통해 책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책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과정이 좋다고 느꼈다. 그리고 꾸준히 그 느낌을 받고 싶었기에 강의를 듣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독서 모임을 추진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독서모임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2 년 넘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책에 대한 심상을 떠올려보면 뭔가 약간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햇빛이 비춰지면서 옅고 뿌연 막이 비춰지는 느낌의 숲이 떠오른다. 이거는 내 여행 취향이랑도 좀 맞닿는 부분이 있는데, 여행에 대한 심상도 동일한 심상이다.

책을 읽는 행위, 깨달음을 얻는 과정, 책을 읽으면서 얻은 깨달음이나 감정을 독서 모임에서 나누는 과정 하나하나가 재미있다.
이렇게 독서모임을 꾸준히 이어오고 책을 읽어왔던 이유, 재미있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무엇이 좋은 걸까.
책을 통해 ” 구조의 재미 ” 를 느낀다. 책의 전체 구조 안에서 하나의 줄기를 따라가며 가지들을 연결해나가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그 구조가 책이 품고 있는 의미나 상징과 맞닿을 때, 비로소 하나의 해석이 완성될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구조를 읽고, 상징을 읽고, 그것들을 하나로 연결해나가는 과정. 이것이 현재 내가 책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재미다.
책은 ” 퇴적 ” 의 매체다. 책은 영상이나 인터넷과 달리 정보를 시간을 두고 곱씹으며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작년말, 혹은 올해 초반쯤에는 나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답을 책에서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물론 책을 통해 명확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책이 내 고민에서 항상 한 발 앞서 있었던 느낌이었다. (고민을 해결해줄 책을 찾아봐서 그런가…?) 여하튼 그런 생각과 고민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매체이다.
독서 모임을 통해 ” 내 관점 ” 이 생겨났다. ” 스펙트럼 ” 이 넓어졌다. 초반에는 내 관점이라는 것이 없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내 취향이 무엇인지, 책을 읽을 때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등 관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의 태도는 책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 태도였다. 책 하나에도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이런 나에서 독서 모임을 시작하고 1 년에서 1 년 반쯤 지났을 때, 친구들부터 이미 내 책 취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도 내 관점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생겼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전, 철학을 좋아한다. 어렵지만 해석해내고, 이해하고, 배울 점을 깨닫다보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본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그에 반해 당시의 나를 짚어보면 소설이나 산문의 재미는 모른채 그저 줄거리를 파악하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편독을 한 것은 아니지만 편독을 원하는 경향성을 가졌다. 그러나 최근 신형철 작가의 『슬픔을-공부하는-슬픔—신형철』을 읽으면서 달라졌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배웠고,인물의 내면을 파악하고 그 속까지 이해함으로써 복합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문학의 재미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 스펙트럼이 한켠 넓혀졌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혼자서는 읽지 않았을 분야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관점이 형성되었다.
2 년 전에 비해 현재의 나는 많이 단단해졌고, 강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파악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이전에는 ” 불안 ” 이 있었다. 정해진 시기에는 정해진 무엇을 해야 하고, 랩 인턴을 해야 하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야 한다는 말들. 그 길을 따라가려 했고, 따라가지 못하면 좌절했다. 정해진 길을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anxiety-is-related-to-self-confidence) 그러나 지금은 생각보다는 직접 해보려 하고, 정해진 길보다는 나의 길을 가보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이 좋다. 이 느낌이 좋다. 시간이 나면 의미 없이 서점에 들르고, 학교에서도 열람실보다는 책이 많은 도서 자료실로 간다. 책이 주는 ” 안정감 ” 이 있다. 책이 좋다. 좋아서 독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