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책 리뷰] 강동규
Reviewed by Kade Kang (devkade12@gmail.com)
Reviewed:: 2025-11-29, 48week

Summary of key points

  • 글쓰기는 생명과 시간의 가치 인식을 전제로 하는 엄격한 작업이다.
  • 타인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슬픔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 사랑과 슬픔은 서로를 전제하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며, 상실의 뒷모습은 인생의 앞모습이다.
  • 폭력은 상대에 대한 섬세한 이해의 포기이며, 문학은 끝까지 듣고 나중에 판단하는 태도를 지닌다.
  • 단편소설은 삶의 미세한 파열선을 발견하고, 시는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다.
  • 온전함은 상호 배려와 진정한 비판을 통해 성취되며, 생각은 의식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

Context

  • 이 글은 신형철의 저서를 바탕으로 글쓰기, 슬픔, 사랑, 소통, 예술, 비판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 현대 문학과 인문학에서 다루는 인간 존재의 결함, 타인 이해의 한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 자신의 경험 및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슬픔과 사랑의 복잡한 감정을 자각하며, 인내와 섬세함을 통한 윤리적 소통을 강조한다.

Significance

  • 인간과 예술, 사랑과 슬픔, 비판과 소통에 관한 근원적인 통찰을 제공하여, 개인의 삶과 윤리적 태도를 재고하게 한다.
  • 특히 슬픔을 공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인간 존재의 근본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선택의 가치를 일깨운다.
  •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자의식을 통해 AI 시대에도 인간 창작의 의미와 지향점을 고민하게 만든다.

While Reading

인상 깊은 문장

  • 세상에는 교환 아닌 것이 별로 없으므로, 좋은 글을 얻고 싶다면 이쪽에서도 가치 있는 것을 줘야 한다는 것.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줄 수 있다. 생명은 ’ 일생 ’ 이라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시간이라는 형태로 분할 지불이 가능하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곧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 우리가 스스로 야기한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 이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
  • 아이스킬로스의 소위 ’ 고통을 통한 배움 (pachei mathos)《아가 멤논>, 177 행) 이란 고통 뒤에는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지만 고통 없이는 무엇도 진정으로 배울 수 없다는 뜻도 된다. 타인의 슬 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 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한 소식이다. 그런데 더 비참한 소식은 우리가 그런 교육을 통해서도 끝내 배움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결점으로 인해)
  •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 그녀가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말하지 말자. 그저 이 ’ 뒷모습에 도달하기 위해 출발한 소설이라는 것만 말하자. 이 소설에 몇 개 의 뒷모습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뒷모습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 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 우리가 흔히 삶의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순간의 표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표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행복한 가족의 어느 가장이 아내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문득 자살을 감행할 수도 있는 게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나. 그냥 보여줄 수밖에. 그 남자의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보여줄 수 밖에
  •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 어딘가에 단편소설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파열의 선 (%)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썼었다. 삶의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는데 인물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파열을 깨닫는다. 단편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 모든 예술 장르는 각자의 매체를 갖는다. 음악이 소리를, 회화가 색을, 영화가 영상 을, 무용이 몸을 갖고 있듯이, 문학은 언어를 갖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소설가는 없다. 그러나 이 사실에 ’ 시달리는 ’ 소설가는 드물다. 시달리지 않는 소설가들은, 그냥, 쓴다. 그럴 때 문장들은 달콤한 먹이를 실어 나르는 개미들처럼 부지런히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여기엔 매체에 대한 자의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자의식이야말로 예술가의 존재 증명이라면?
  •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 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 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 김종엽의 저서〈분단체제와 87 년체제)〈창비, 201 기) 의 한 대목에 서 저자는 ’ 보수와 진보 ’ 대신에 보수와 민주 ’ 라는 명명법을 택 하고 그 이유를 밝힌다. ” 구별의 두 항은 각각 상대가 아닌 것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즉, ’ 보수와 진보 ’ 라는 구별에서 보수는 ’ 진보가 아닌 ’ 것이 되지만, 보수와 민주 ’ 라는 구도에서 보수는 ’ 민주가 아닌 ’ 것으로 제 자리를 부여받는다는 것.
  • ’ 시는 매끈한 해답을 쥐여주기보다는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데 소질이 있는 예술이다.
  • 이렇게 시는 어떤 특별한 무지의 상태를 포착하는 작업이다
  • 말-장승리
  • 둘이 (다시) 하나임 ’ 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둘일 때라야 ’ 온전함 ’ 에 도달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이 신화적 상상력의 현명한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일 때보다 둘일 때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나는, 내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누군가를 만나서, 온전해진다. 다만 그것은 위 신화가 말하는 것처럼 운명적 짝을 다시 만나 이뤄지는 기적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로 인해 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상호 배려로 성취되는 일일 터이다.
  • 인간이 인간일 때,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인간적인 것일 때, 그럴 때 당신은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오직 신뢰와만 교환할 수 있다. 당신이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예술적인 소양을 쌓은 인간이어야 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 어떤 이를 비판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는 상대방을 ’ 비판하기 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중략) 요컨대 진정한 비판은 적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과 맞서는 일이다. 그럴 때 나의 비판 또한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대로 적을 대하는 태도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돼 있다. 적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적을 사랑하면서 고귀해질 것인가, 적을 조롱하면서 공허해질 것인가. 수많은 매체가 생겨나고, 수많은 비판들이 쏟아진다. 좋은 비판과 나쁜 비판이 있다. 전자는 어려워서 드물고 후자는 쉬워서 흔하다.
  • 흔히 인문학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월리스에 따르면 그것은 곧 ’ 어떻게 ’ 생각하는가와 ’ 무엇을 ’ 생각하는가에 대해 ’ 선택 ’ 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이란 곧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것. 어떤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이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어느 쪽이 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아주 심각한 이야기다.
  •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만큼 말을 쉽게 해왔다는 뜻일 수 있다.
  • 그렇다면 시간과 관련 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하리라.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좋을 것들이 변하지 않도록 지켜내고, 변해야 마땅한데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변할 수 있도록 다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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